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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태백산사고지 발굴조사

등록일 2024-10-22 작성자 정지윤 조회수 71

 

글유형 발굴조사 조사기간 1988.08.10. ~ 1988.09.20.
조사자 대구대학교 중앙박물관 보고서 유무 O
보고서 제목 태백산 사고지 발굴조사 보고서 발행년도 1988.12.26
종류 발굴조사 보고서 쪽수 173

 

조선후기 5대사고의 하나인 태백산 사고는 선조 38(1605) 10월 경상감사 류영순(柳永詢)이 태백산의 '立峰之下'가 사고지로 적당하다고 보고되어 조정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곧 공사에 착수다음해인 1606년 4월에 사고 건물을 완성하였고다음달인 선조 39년 5월에 새로 인간(印刊)된 실록(太祖明宗)을 봉안하기로 결정하였다.

그후 후금(後金)의 위협이 있자 茂朱 적당산에 사고를 설치하여 인조 때에 묘향산 사고본을 옮겨 위난(危難)을 피하였고숙종때에 마니산 사고본은 정족산 사고로 옮겼으며같은 시기에 태백산 사고의 위치에 대하여도 논란이 있었다즉 인조 12(1634) 3월에 待敎 兪榥이  하기 위하여 태백산에 도착하여 사고의 지형을 살펴보니 사고가 고봉의 양 언덕 사이에 위치되어 물이 잘 빠질 곳이 없어 도랑이 메워지고 주방이 물러나므로 현 위치가 적당치 않다고 보고하고후보지로서는 그곳에서 1리 쯤 떨어진 루운암 뒤에 건물을 지을 만한 터가 있다고 이야기 되었다그래서 유사에서도 유황의 보고에 따라 시행할 것을 논의하였으나 이를 시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고가 처음 설치된 지 3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사고형세경위'할 정도였으므로 태백산 사고의 위치가 아주 완벽한 곳은 되지 못하였지만대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큰 암반을 운반하여 축대를 높이 쌓고배수시설까지 잘 갖추어 비로서 사고터를 마련한 것으로 보아 다른 곳으로 이건되었을 가능성은 없다이건하였다면 좀더 평탄한 곳으로 옮겼을 것이기 때문이다오늘의 태백산 사고지는 양 고봉사이에 각화산을 뒤 배경으로 위치하고 있고현재도 산에서 배어나오는 물이 끊이질 않고 있으나사고지의 중심 위치에 위치한 춘양면 소재지와 멀리보이는 산세를 감안하면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를 연상케 한다.

사고의 건물배치는 능선으로 약간 둘러싸인 경사진 지형에 남쪽으로 높은 축대를 쌓고 대지를 마련한 뒤 실록각(實錄閣)과 선원각(璿源閣)을 평면 타원형의 담 안에 동·서로 배치하고 있다.